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누구나 살아가면서 가슴속에 상처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. 친구 사이든, 가족 사이든,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에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생긴 것이든. 그런 상처를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, 그 상처 하나 때문에 더 큰 상처를 받고는 삶을 포기해 버리는 사람도 있다.

 

2월에 내가 죽인 아이란 책에서 트렌트는 하키 경기 도중 자신이 친 퍽으로 인해, 심장질환을 앓던 친구 재러드가 갑자기 죽으면서 그 죄책감 때문에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점점 더 문제아로 생활하게 된다. 이런 트렌트에게 학교에서 조용히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은 역시 얼굴에 커다란 상처를 가지고 있어서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받는 팰런이란 친구이다. 트렌트는 팰런 뿐만 아니라 담임인 에머슨 선생님과 가족들, 그리고 이웃들 덕분에 자신의 마음 속 상처가 자신의 잘못이 아님을 깨닫고 방황하던 삶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된다. 트렌트는 어쩌면 너무도 정직했기 때문에 그동안 더 괴로운 시간을 보냈고, 또 그런 시간을 통해 훨씬 더 성숙한 청소년이 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.

 

이 소설을 통해 진정한 기다림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. 어떤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. 그런데 그런 절대적인 시간을 무시한 채 겉으로만 빨리 해결되는 걸 원하며 살아가고 있진 않은지? 또는 화풀이할 대상을 선택한 후 그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어 감당할 수 없는 비난을 퍼부으며 잠시나마 속이 후련해지기를 느끼며 위안을 삼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…….

 

어떤 문제의 발생은 우연일 수 있어도, 그것을 슬기롭게 풀어가는 데는 우연이란 있을 수 없다. 그것은 그 일과 관계하고 있는 구성원들의 절대적인 도움이 있어야만 일이 풀릴 수 있는 복잡한 관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. 트렌트의 상처도 가장 먼저 그대로 받아들여 준 것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그의 가족들이었다. 트렌트의 엄마 아빠가 이혼을 한 후 따로 살고 있었지만, 그 중심에는 항상 가족이 존재하고 있었다. 또한 트렌트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에서도 그를 있는 그대로 봐주고,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 주는 선생님이 계시고, 또 트렌트의 손을 잡아주는 친구 팰런이 있었기 때문에 상처가 치유될 수 있었던 것이다.

에머슨 선생님은 트렌트의 모습을 가장 객관적으로 봐주고, 또 트렌트가 갇힌 공간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준 진정한 지원군이라고 할 수 있다. 아마도 트렌트에게 한 발 더 다가가려는 선생님의 모습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 힘이 되는 존재였으리라. 팰런의 부모님이 트렌트와 팰런이 만나는 것을 반대할 때도, 에머슨 선생님은 진실을 말하라.”고 응원하며, 트렌트가 팰런의 부모님 앞에 당당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용기를 주었다.

 

우리는 살아가면서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기도 하고, 또 남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. 이런 과정들이 성장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, 때로는 살아가면서 큰 트라우마가 되어 우리의 삶을 괴롭히는 때도 있다. 이런 때 한번쯤 이 소설을 떠올려 보면 좋겠다. 상처는 내 뜻과 전혀 상관없이 찾아올 수 있다. 다만 상처를 극복하는 지혜로운 방법은 내 안에 있고, 내 주위 사람들이 함께 공감해 줄 때 더 쉽게 치유될 수 있음을 잊지 말자.